
처음 육신사에서는 박팽년 선생 한 분만을 모시고 제향을 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팽년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은 선생의 기일에 기이한 꿈을 꾸게 됩니다.
꿈속에서 박 선생과 함께 생사를 함께했던 다섯 충신(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이
사당 문 밖에 나란히 서서 서성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박계창은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한 분의 충절만이 아니라, 여섯 분의 뜻을 함께 기려야 한다.”
그는 사당 안에 다섯 분의 위패를 새로이 모셨고,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여섯 충신 모두에게 제향을 올리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팽년 후손 출생의 비밀

박팽년의 가문은 사육신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문으로
사육신이 복권되면서 조선후기에는 관직에도 많이 진출했습니다.
사육신 중 하게 대가 이어지게 된 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육신 박팽년이 처형된 후, 그의 집안은 참혹한 연좌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전 재산은 몰수되었고, 어머니와 처첩, 아들의 처첩 등 여성들은 모두 노비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남성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했으며, 살아남은 이조차 없었습니다.

당시 박팽년의 아들인 박순의 아내 이 씨는 임신 중이었 습니다. 조정에서는 태어날 아이가 남자일 경우 죽이고, 여자일 경우에는 노비로 삼으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다행히 박씨 집안의 한 종이 같은 시기에 딸을 낳았고, 두 가족은 아이를 바꾸는 지혜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렇게 목숨 을 건져 살아남은 아이는 훗날 성종 때 자수하여 사면을 받았고, 그가 바로 박일산(朴壹珊)입니다.
정착한 묘골마을

박일산은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골 마을에 정착해
순천 박씨 가문의 입향조가 되었으며, 이 마을은 지금까지도 그의 뿌리를 간직한 순천박씨 집성촌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