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순절한 사육신(박팽년, 성삼문, 유성원, 하위지, 이개, 유응부)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본래는 박팽년 선생만을 모시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사당을 지었으나, 현손 박계창이 사육신이 사당 밖에서 서성이는 꿈을 꾼 것을 계기로 여섯 충신 모두에게 제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빈사(河濱祠)’로 불리며 유림에 의해 제사가 이어졌고, 1694년에는 ‘낙빈’이라는 이름으로 사액 서원이 되었으나, 1866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습니다. 이후 1975년, ‘충효 위인 유적화 사업’을 통해 지금의 육신사가 다시 건립되었습니다. 현재 육신사에는 숭정당, 숭절당, 사랑채, 외삼문, 내삼문 등의 건물과 보물 제 544호로 지정된 달성 태고정과 태고정 안채 등이 남아 있습니다.
태고정은 1479년, 사육신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 선생이 지은 정자로, 본래 종가 안 별당 건물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4년(광해군 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며, 조선 전기 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 문화재입니다.
도곡재는 1778년(정조 2년), 대사성을 지낸 박문현 선생이 주택으로 건립한 고택입니다. 이후 19세기 중엽, 도곡 박종우 선생의 재실로 사용되며 그의 호를 따 ‘도곡재’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도곡재는 조선 남부지방 양반가옥의 전형적인 형태를 잘 간직한 건물로, 안채·사랑채·대문채가 각각 독립된 공간을 이루며 '튼 ㅁ자형' 구조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랑채였던 공간은 재실로 사용되며 대청을 넓히고 퇴칸을 덧붙여 누각처럼 꾸민 것이 특징입니다. 도곡재는 건축사적 가치뿐 아니라 인물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간으로, 청렴한 절의로 알려진 박종우 선생의 삶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유서 깊은 고택입니다.
사육신 기념관은 2002년, 사육신 중 한 분인 박팽년 선생의 충절과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공간입니다. 기념관 내부에는 사육신의 생애, 단종 복위 운동, 처형 과정 등을 다룬 다양한 역사 자료, 유물, 회화, 문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들을 통해 조선 시대 충신들의 정신을 깊이 있게 되새길 수 있습니다.
사육신 기념관은 청소년 및 일반 시민들에게 역사적 교훈과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해설 프로그램과 체험 학습, 기획 전시 등이 이루어져 지역사와 충절 정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습니다.
삼충각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박팽년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835년에 세운 비석과 함께 1874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이 사당은 사육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매년 춘추절에 향사를 지냅니다. 현재의 건물은 1982년 복원된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팔각지붕 구조로, 전통적인 양식이 잘 보존된 문화재로서 박팽년 선생의 충의를 기리고 있습니다.
박두을 여사(1907~2000)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부인으로,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묘골마을에서 태어난 박 여사는 유교 집안에서 전통적인 가풍을 익히며 성장하였고, 21세에 이병철 회장과 혼인하여 내조에 힘썼습니다. 박두을 여사는 검소하고 근검절약하며 예의범절을 지키는 삶을 살았고, 삼성그룹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유년 시절 한 스님이 그녀의 관상을 보고 “왕비가 아니면 거부의 아내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유명한 일화도 전해집니다.